눈의 날 오카모토 카노코
베를린 카이저가의 오래된 큰 아파트에 살고 있던 어느 겨울날의 일입니다. 밖에는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습니다. 안에서는 천장을 관통하는 큰 연통이 달린 난로에 장작을 계속 쉼 없이 넣고 있었습니다. 노면전차의 진동과 자동차의 경적만이 들릴 뿐, 거리에는 개 한 마리 짖는 소리도 없이, 쌓인 눈 속에 쌓여 고요한 한낮을 보내던 참이었습니다.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 ― 이리도 눈이 오는 날에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며 문을 열자, 우르르 세 사람이 들어왔는데 청년·장년·노년으로 이뤄진 연대가 고루고루 섞인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저희는 실내 전선을 고치러 왔습니다.”
미소를 띄며 말했습니다. 느닷없이 닥친 사람들에게 잠시 놀란 저였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집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저는 베를린에 오고나서 곧바로 (저는 그해 초여름 베를린에 왔습니다) 베를린의 노동자들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순박하고 밝은 사람들입니다. 트럭 위에 올라 타 있는 노동자들이 이국땅에서 온 우리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이 근로 생활을 선의로 받아들이고 있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호의를 표혔고, 조금이라도 외국사람 특유의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노동자들의 복장도 겉보기에는 남루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역시 독일인의 철저한 청결함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들의 아내나 딸들이 잘 세탁하고, 잘 기워 입혔다는 말이죠.
전선 수리 일이 끝났습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모피 깔개 위에서 쉬라고 권하자 노동자들은 순순히 그 위에 앉아 난로를 쬐기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하녀가 이삼 일 전부터 감기에 걸려 집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조금 떨어진 건너방에서 일본 신문에 보낼 그림에 몰두하고 있었지요. 저는 혼자 차를 끓여 그들에게 건냈습니다.
“담배 드릴까요. 일본 담배에요.”
그렇게 말하며 저는 남편이 있는 쪽으로 시키시마*라도 가지러 가려고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그 중에 중년 남성이 제게 말했습니다.
“담배는 괜찮습니다. 일본 아가씨(서양인들은 동양인의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합니다), 대신 일본 노래를 불러주세요.”
“일본에서도 노래를 부르나요, 아가씨?”
라고 노인이 매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습니다. 저는 다시 자세를 잡고 앉아 바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저는 모두에게 눈을 감고 있으라고하고, 카추샤*를 목소리를 떨지 않는 일본식으로 평탄하게 불렀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그건 러시아 노래 같다 했습니다. 역시 음악의 나라 독일 사람이라며 감탄하며 이번에는 정말 순수한 일본 노래라 미리 말해 두고
“둥둥, 둥둥둥, 파도를 넘어―”*
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중년의 남자가 또 말했습니다.
“아가씨, 그건 남자 생도가 부르는 노래같은데요. 제가 바라는 것은 일본 여성…그러니까 숙녀분들이 평소에 부르는 노래입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더욱 단순한 음조로,
사쿠라, 사쿠라*
삼월 하늘 저편까지
안개인가 구름인가, 향기마저 피어오르네. 자, 가세, 가세, 보러 가세.
하고 불러주었다. 모두 기뻐하며 일어섰다. 얼마나 품위 있고 달콤한 선율이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에게도 자랑할 거에요”
라고 하며 감사를 표하고 공구를 어깨에 메었다. 그리고 여전히 눈내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현관 쪽으로 나가려던 그때, 지금까지 말이 없던 청년이 멈춰 서서 다시 저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습니다.
“우표를, 일본 우표를 한 장 주세요. 세계 여러 나라의 우표를 모으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격렬한 노동 생활로 투박해진 그의 사랑스러운 손바닥 위에, 저는 고국에서 온 소중한 편지의 봉투에서 우표를 여러 장 떼어 올려 주었습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