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다자이 오사무
벌써 서른일곱입니다. 얼마 전, 어떤 선배가 참 잘도 여기까지 왔네라고 새삼스럽게 말하더군요. 저도 서른일곱까지 살아온 것이 거짓말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나마 전쟁이 있어 겨우 살아남는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벌써 아이도 둘 있습니다. 위가 여자아이로 올해 다섯 살입니다. 아래로는 남자아이로 작년 8월에 태어나 아직 아무것도 못합니다. 적의 비행기가 습격해오면 아내가 둘째 아들을 업고 저는 첫째 딸을 안고 방공호에 뛰어듭니다.
며칠 전, 적기가 갑자기 급강하하여 바로 근처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방공호에 뛰어들 틈도 없이 가족이 둘로 갈라져 오시이레(일본식 붙박이 수납장)에 숨어들었습니다. 곧 ‘쨍’ 하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첫째 딸아이가 공포심도 뭐도 없이 생각 없이 그저 들떠 “아, 유리가 깨졌어”라 말했습니다.
적기가 떠난 후, 소리가 난 곳으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다다미 세 장짜리 작은 방의 창유리가 깨져 있었습니다. 저는 말없이 쪼그리고 앉아 유리 조각을 주워 담는데 손끝이 떨리더군요. 자연스레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고치고 싶어서 아직 공습경보가 해제되지도 않았는데도 기름종이를 잘라 깨진 곳에 붙였습니다.
다만 지저분한 뒷면을 바깥에 깨끗한 면을 안쪽으로 하여 붙여버린 탓에 아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제가 나중에 할 건데요. 이러면 거꾸로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또 한 번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요.
피난을 가야되는데 이래저래 사정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금전 문제로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벌써 봄이 와버렸습니다. 올해 도쿄의 봄은 북녘 나라의 봄과 무척이나 닮아 있습니다. 녹은 눈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니까요. 첫째 딸아이는 자꾸 버선을 벗고 싶어합니다.
올해 도쿄의 눈은 40년 만의 폭설이라 하더군요. 제가 도쿄에 오고 벌써 어느덧 15년쯤 되었지만 이런 큰 눈은 겪은 적이 없습니다. 눈이 녹자마자 꽃이 피기 시작하다니 꼭 북녘의 봄 같습니다. 도쿄에 있으면서도 고향으로 피난 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이번 폭설 덕분입니다.
지금 첫째 딸아이가 맨발로 각코(일본 전통 나무 샌들 ‘게다’의 유아어) 신고 눈이 녹은 거리를 지 어미 손에 이끌려 목욕탕으로 갑니다.
오늘은 공습이 없는 모양입니다.
전쟁터로 가는 어린 친구의 깃발에 ‘남아필생 위기일발’(사내 일생일대의 위기)이라 적어주었습니다.
분주함, 한가함, 모두 한 끝발 차이.